방송칼럼

드라마 역주행은
OTT를 타고

OTT가 불러온 새로운 현상, 드라마 역주행

정덕현 문화평론가

KoBPRA WEBZINE WRITE.S vol.85

역주행 하면 먼저 음원을 떠올린다.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노래가 갑자기 차트에 들어오는 음원 역주행이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드라마도 역주행을 하고 있다. 짧게는 1,2년 전 드라마부터 길게는 20년도 더 지난 드라마까지. 무엇이 이런 현상을 만든걸까.


약 20년 전 드라마 <전원일기>의 역주행

2021년 MBC는 60주년 특집으로 <전원일기 2021> 다큐멘터리 4부작을 방영했다. <전원일기>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3년 간 방영됐던 농촌드라마다. 다큐멘터리는 당시 종영과 함께 각자의 삶을 살게된 <전원일기>의 가족들이(배우) 다시 만나 현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또 당대를 추억하는 시간을 담았다. 드라마의 중심이었던 최불암, 김혜자는 물론이고 고두심, 박순천, 김용건, 유인촌, 김수미, 김혜정, 박은수 등등 <전원일기>를 보고 자란 기성세대들이라면 반색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왜 이 다큐멘터리는 60주년 특집으로 세월이 한참 지난 <전원일기>를 재조명하게 된 걸까. 그건 당시 이미 오래 전 종영한 이 드라마에 대한 예기치 못한 관심과 반응들이 거의 신드롬급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당시 토종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웨이브에서는 <전원일기>가 인기드라마 톱10에 오르는 놀라운 역주행 현상을 보여줬다. 게다가 MBC ON, 엣지티비, 채널 유, KTV 등 7개 채널에서는 앞다퉈 <전원일기> 전편을 방영했다. 23년 간 방영됐던 드라마이니 분량도 어마어마했지만, 이 드라마는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도대체 이런 일은 왜 벌어지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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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그 진원지는 OTT다. 언제 어디서든 접속해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이 플랫폼은 드라마 시청 패턴을 바꿔놓으면서 동시에 소비 패턴도 변화를 만들었다. 즉 과거의 드라마라고 하면 실시간 방송이 가장 중요했고, 따라서 그 실시간을 반영한 시청률이 드라마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됐다. 시청률 수치에 따라 결정되는 광고 수입으로 드라마 제작이 이뤄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OTT의 등장으로 ‘실시간’도 또 ‘시청률’도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니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만 소비되는 게 아니었다. 과거에 이미 방영되었어도 명작이라고 불리는 드라마들이 현재로 다시 소환되어 소비되기 시작했다. <전원일기> 신드롬이 생겨난 이유였다. 연령대가 있는 시청자들에게 OTT가 내놓는 ‘핫한 드라마’는 오히려 낯선 것이 될 수 있었다. 장르물이 늘어나고 속도감도 빨라졌으며 소재적으로든 표현수위로든 자극적인 드라마들도 많아졌다. 어르신들은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 속에서도 “요즘은 볼 게 없다”는 얘기를 꺼내놓았다. 그러니 만 원 남짓의 월구독료만 내면 하루종일 틀어놓을 수 있는 OTT에서 <전원일기>같은 옛드라마가 주는 취향저격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OTT 드라마들은 연관 검색어를 타고

물론 이러한 역주행은 <전원일기> 같은 오래된 옛드라마에만 국한된 게 아니고, 또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끼는 기성세대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도 이제는 현재 바영되고 있는 드라마가 아닌, 조금 지나간 명작 드라마를 찾아보는 새로운 드라마 시청 패턴을 갖게 됐다. 예를 들어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가 방영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을 때 OTT에서는 이 작가의 전작이었던 <나의 아저씨>가 다시 국내 톱10 차트에 오르는 역주행을 보여줬다. 또한 배우에 대한 갑작스런 관심이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OTT 역주행을 불러 일으키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이제 드라마 시청자들은 현재의 핫한 드라마보다 감명 깊게 본 드라마를 쓴 작가의 전작을 찾아보거나 혹은 배우의 작품을 찾아보는 다소 마니아적인 시청 패턴이 생겨났다.

이 같은 좋아하는 취향을 파고드는 시청 방식은 과거에는 접근성이 쉽지 않아 일부 ‘마니아’들만 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졌다. 즉 좋아하는 작가의 옛 드라마들을 하나하나 챙겨보려면 그걸 일일이 찾아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했던 것이다. 하지만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OTT의 경우는 이런 수고가 필요없어졌다. 구독자가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 연관 작품으로서 <나의 아저씨>를 제안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덕질’에 가까운 시청은 이제 OTT를 타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이렇게 되자 이제 아예 OTT들은 이걸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하나의 마케팅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무인도의 디바>가 인기를 끌 때, 그 주연배우인 박은빈이 출연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작품을 OTT가 전면에서 다시 홍보하는 식이다. <연인>으로 주목받은 남궁민과 안은진이 과거 각각 출연했던 <스토브리그>나 <나쁜 엄마> 같은 작품들이 다시금 화제가 되어 역주행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다. 또 <스위트홈>처럼 넷플릭스가 오리지널로 제작한 드라마가 시즌2를 시작하면 당연히 시즌1을 다시 재배치해 구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도 이제 일반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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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JTBC


시간도 세대도 훌쩍 뛰어넘는 OTT의 취향 소비

역주행 현상이 일어나는 건 OTT라는 플랫폼에 의해서 시간이나 세대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하나의 취향으로 재집합하는 새로운 시청 소비 패턴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즉 <전원일기>가 OTT 톱10에 들어오는 건 기성세대의 소비만이 아니라, 의외로 젊은 세대들도 이 콘텐츠를 유니크하게 받아들이며 소비했던 데서 나온 결과다. 젊은 세대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목가적인 전원생활에 대한 신기함은 물론이고,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화해가는 현 디지털 세대의 반작용으로서 이 작품이 가진 아날로그적이고 느린 속도가 주는 매력도 작용했다. 그러니 그건 시간이나 세대 차이로 나눌 수 없는 그들을 묶어주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건 바로 취향이다.

알다시피 OTT는 ‘구독’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OTT를 선택하는데서부터 그 사람의 취향이 들어간다. 글로벌하고 자극적이지만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원한다면 넷플릭스를, 국내 토종 OTT면서 트렌디한 콘텐츠를 원한다면 티빙을, 보다 클래식한 지상파 중심의 콘텐츠를 원한다면 웨이브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선택한 OTT 안에서도 소비방식은 마치 ‘팬덤’의 방식을 따라간다. 옛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 특정 작가나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 취향으로 나뉘어진 콘텐츠를 팬처럼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 본방의 시대가 가진 같은 시간대에 모두가 좋아하는 ‘보편적인 시청’이라는 건 OTT에서는 큰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역주행’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착시효과에 가깝다. 그건 본방의 시대에 우리가 봐왔던 방식과 그래서 나타난 결과들을 염두에 뒀을 때 ‘기현상’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 봤어?” 과거 지상파 시절에 이렇게 물어보면 그건 ‘어제 방영된’ 드라마를 얘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OTT 시대에는 그 질문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그건 어제의 드라마가 아닌 몇 년 지난 드라마라도 자신의 취향을 저격했던 작품을 얘기하는 것이 됐다. 그래서 명작 드라마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오래도록 사랑받으며 드라마가 나왔던 시절에서 훌쩍 지나간 시점의 새로운 세대들에게도 계속 시청되고 회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배우가 가진 영향력 또한 과거에 비해 막강해졌다. 한 배우의 호연이나 그로 인해 만들어진 매력은 그 작품만이 아니라 그가 출연했던 이전 작품들을 역주행시키고 또 앞으로 나올 작품들의 성패를 가르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과 세대를 넘어 취향으로 모아지는 OTT 시대의 달라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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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고,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