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파업의 공백을 잇는
임시계약(Interim Agreement)

전지훈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경영운영팀

KoBPRA WEBZINE WRITE.S vol.84


“조합이 파업을 결정한다면, 우리도 집으로 가야죠.”
미국 영화배우 맷 데이먼이 영화 <오펜하이머> 시사회 현장을 떠나며 남긴 말이다.

7월 14일, 영국 런던에서 영화 <오펜하이머> 시사회가 열렸다.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라미 말릭 등 영화에 출연한 주연 배우들이 홍보를 위해 레드카펫에 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행사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은 <오펜하이머>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 뿐이었다. 미국배우조합(SAG-AFTRA) 소속 배우들이 조합의 파업 개시 명령에 따라 시사회 현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은 인터뷰를 통해 이번 파업이 “배우들의 정당한 계약을 만드는 길은 쉽지 않겠지만,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이라며 지지를 표명했다. 맷 데이먼을 비롯한 세계적인 배우들이 이번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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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업의 대상은 미국배우조합이 영화‧TV제작자연맹(AMPTP, 이하 제작자연맹)과 계약된 모든 프로젝트다. 제작자연맹은 아마존, 애플, 디즈니, 폭스, NBC, 넷플릭스, 파라마운트, 소니, 워너브라더스 등 미국의 유수한 대형 제작사들이 모인 제작자 단체이다. 배우조합은 3년마다 제작사연맹과 협상을 진행하는데 올해는 그간 요구해오던 조건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결국 지난 5월부터 파업에 들어간 미국작가노조(WGA)와 함께 1960년 이후 63년 만에 동맹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기간동안에는 배우조합원들은 제작자연맹과 맺은 어떤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없으며, 제작자연맹이 제공하는 어떠한 것도 받을 수 없다.


파업의 쟁점은 임금 인상 요율, AI를 통한 배우의 실연을 활용하는 데에 관한 보상, OTT 상영으로 인한 재상영분배금의 조정, 모든 배우들에게 헤어 및 메이크업 제공 여부 등이다. (이번 파업의 주요 쟁점에 관한 내용은 웹진 84호 메인 이슈에 상세히 소개되었다. 기사 보러가기)


파업의 공백을 잇는 ‘임시계약(Interim Agreement)’


모든 파업에는 명분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명분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한다. 파업이 힘든 이유는 삶의 근간이 되는 그 ‘명분’을 지키고자 선택한 ‘파업’으로 일상의 생계가 막힌다는 것이다. 용기와 결단이 더해져야 하는 이유다. 알다시피 미국배우조합은 2023년 현재 조합원수만 16만 명에 다다른다. 배우조합이 배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파업을 선택했다는 의미는 16만 명의 일상이 멈췄다는 이야기와 같다.


미국배우조합의 수석 협상가인 던컨 크랩트리-아일랜드(Duncan Crabtree-Irleland)는 파업의 공백으로 인한 배우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작사연맹 소속이 아닌 독립제작사와의 “임시계약(Interim Agreement)” 시스템을 구동시켰다.


던컨은 “대형제작사들은 배우조합의 요구사항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독립제작사는 우리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도 충분히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번 계약을 맺었다. 이 사실은 배우조합이 요구하는 내용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임을 증명한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1960년과 1980년 파업 때도 임시계약 시스템을 실행했으며, 이 시스템은 파업으로 인해 배우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좋은 수단이 되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번 독립제작사와의 계약에는 배우조합이 제작자연맹에게 제안한 요구 조건이 동일하게 반영되었고, 실제로 지금까지 380여 개의 프로젝트가 체결되었다. 이로써 배우조합은 조합의 요구 조건이 대형 제작사보다 자본이 상대적으로 적은 독립제작사도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