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웹툰 원작 드라마의 시대,
그 빛과 그림자

웹툰 원작 드라마 전성시대가 변화시킨 것들

정덕현 문화평론가

KoBPRA WEBZINE WRITE.S vol.84

웹툰 원작 드라마들이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약 10년 전부터 웹툰의 드라마 리메이크가 본격화되었지만, 지금은 창작 시나리오보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더 많이 제작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고 이 변화는 무얼 예고하는 걸까.


웹툰 원작 드라마의 전성시대

바야흐로 웹툰 원작 드라마들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최근 넷플릭스와 디즈니+에서 각각 제작 방영되어 전 세계적인 열광을 불러일으킨 <마스크걸>과 <무빙>이 바로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다. <마스크걸>은 매미, 희세 작가가 글과 그림을 함께 한 웹툰이고, <무빙>은 한국의 1세대 웹툰 작가인 강풀 원작의 웹툰이다. 지상파도 케이블, 종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국민사형투표>가 엄세윤, 정이품 작가의 웹툰 원작이고, 최근 시즌2가 종영한 <경이로운 소문>은 장이 작가의 웹툰이 원작이다. 지니TV에서 방영되어 호평받은 <남남>도 정영롱 작가의 웹툰이 원작이고, tvN에서 방영됐던 <이번 생도 잘 부탁해>도 JTBC에서 방영됐던 <킹더랜드>도 모두 웹툰 원작이다. 플랫폼을 망라해 웹툰이 드라마의 원작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가 본격화된 건 2014년 윤태호 작가의 원작 웹툰 <미생>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면서다. <미생>이 성공한 후 웹툰 원작 드라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 <치즈 인더 트랩>, <싸우자 귀신아>, <구해줘>, <부암동 복수자들>, <호구의 사랑> 등등 CJ ENM 계열의 tvN, OCN이 앞장섰고, JTBC도 <라스트>, <송곳>,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같은 작품을 제작했으며, 지상파도 이 대열에 뛰어들어 KBS가 <동네변호사 조들호>, <오렌지 마말레이드>, <고백부부>를 MBC가 <운빨로맨스>, <아이템>을 SBS가 <냄새를 보는 소녀>, <하이드 지킬, 나> 같은 작품들을 내놨다. 그리고 넷플릭스 같은 OTT가 한국 작품 제작에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스위트홈>, <킹덤>,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대자본이 요구되는 판타지 계열의 웹툰들도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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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포스터 ©디즈니 플러스, <마스크걸> 포스터 ©넷플릭스



‘만화 같다’는 말의 한계를 넘어서

웹툰 이전, 드라마의 주요 원작은 소설과 만화였다. 하지만 만화는 드라마와 장르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종종 흘러나오곤 했다. 이른바 ‘만화 같다’는 표현에 담겨 있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는 만화의 세계는, 보다 현실적인 세계로 이해되곤 했던 드라마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나마 허영만 화백의 만화가 다수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고 또 성공을 거두기도 한 건, 그 만화가 ‘만화 같지 않은’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였다. 철저한 사전 취재를 통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아스팔트의 사나이>나 <식객> 같은 작품이 그 대표적 사례다. 마찬가지로 초창기 <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의 웹툰 리메이크가 성공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만화 같지 않은 현실적인 이야기가 드라마와 어울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현재, 디즈니+에서 <무빙> 같은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물이 제작되고 또 전 세계에 좋은 반응을 얻어내고 있는 건 그간 대중들이 갖고 있던 드라마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 부분 달라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만화 같다’는 말은 더 이상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만화적 상상력의 색다른 세계가 주는 참신함 같은 긍정적인 의미가 담기게 됐다. 그만큼 웹툰도 또 웹툰 리메이크작에도 대중들이 익숙해졌고, 웹툰의 상상력의 세계를 실감나게 연출해내는 드라마의 제작 능력도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만화 같다’는 말이 한계가 되던 지점을 넘어서면서 웹툰은 보다 본격적으로 드라마의 원작으로 설 수 있게 됐다.


웹툰 원작이 늘면서, 좁아진 드라마 작가들의 입지

현재 K드라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드라마들이 세계적인 위상을 떨치고 있는 상황에 웹툰처럼 양적으로도 넘쳐나고 질적으로도 수준이 높아진 장르가 드라마의 원작 데이터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건 웹툰으로서나 드라마로서나 모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슈퍼IP’를 너나없이 찾는 시대에 웹툰과 드라마의 시너지는 양측 모두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태원 클라쓰>다. 원작 웹툰이 일본에 먼저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던 이 작품은 리메이크된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되면서 일본 내 신드롬을 만들었다. 결국 드라마의 인기는 다시금 원작 웹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길다던가. 웹툰 원작이 늘면서 창작 대본을 쓰는 드라마 작가들의 입지는 좁아진 게 사실이다. 드라마 제작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한 웹툰의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를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 되기도 하고, 원작 팬을 잠재적 소비자로 끌어안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웹툰과 드라마 사이의 경계가 아무리 얇아졌다고 해도 웹툰이 가진 상상력의 세계와 드라마의 그것이 갖는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드라마 대본은 연속극의 전통을 기반으로 함으로써 매회 다음 회를 기대하게 만들고, 그 힘을 바탕으로 끌고 가는 방식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웹툰은 한 페이지에 그림 한 장을 갖고도 스크롤을 내려가며 보는 방식의 긴장감이 만들어질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의 작법과는 사뭇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웹툰을 원작으로 해도 드라마화할 때 리메이크를 통한 변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웹툰 원작 드라마들이 점점 드라마 업계의 지분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원작 대본을 쓰던 드라마 작가들은 기회를 잃거나 혹은 리메이크 작가의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 변화 속에서 연기자들은 어떨까

그렇다면 연기자들은 어떨까. 웹툰 원작 드라마들이 많아지면서 연기자들은 이른바 ‘씽크로율’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경향을 마주하게 됐다. 원작 캐릭터와 이미지적으로 얼마나 닮았는가 하는 것이 비교 대상이 되곤 하는 것이다. 이건 연기 중심으로 생각해 온 배우들에게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는 면들이다. 주어진 캐릭터를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과 더불어, 원작 캐릭터와의 비교를 감당해야 하는 면이 있어서다. 또 웹툰은 그 특성상 상상력의 진폭이 훨씬 넓다는 점에서 연기자들이 연기해야 할 영역이나 그 수행 방식도 넓혀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무빙> 같은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배우들은 현실 연기와 더불어 판타지적인 액션 연기를 해내야 한다. CG 기반의 촬영을 하게 된다면 블루 스크린 앞에서 가상의 대상을 상상하며 연기 몰입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적지 않게 펼쳐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기의 근간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건 작품이 판타지의 세계를 그린다고 해도 그 밑바닥에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표현을 해내야 하는 연기자들 입장에서 색다른 환경에 대한 적응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웹툰 원작 드라마 전성시대는 상상력의 폭을 한껏 높여 놓았고 그래서 작품이 다루는 소재나 영역도 한껏 넓어졌다. 하지만 제작자든 연기자든 이 변화가 만들어 내는 기존 제작 시스템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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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고,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