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위드 코브프라

예능의 완성,
영상편집의 예술

프리랜서 예능PD 조해일

KoBPRA WEBZINE vol.86  INTERVIEWER 이한빛  

주어진 상황 안에서 출연자들 간의 호흡, 일명 티키타카가 얼마나 잘 이뤄지고, 소위 말하는 ‘분량’이 얼마나 단 시간내에 나오느냐에 따라 촬영시간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분량을 잘 뽑아냈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편집하냐에 따라 그 재미는 천차만별로 달라져서 언젠가부터 예능의 완성은 ‘편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보다 더 재밌고 완성도 높은 예능 프로그램을 위해 현재 가장 핫한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프리랜서 PD로 활동하는 조해일 PD를 만나봤다.



안녕하세요. 조해일 PD님,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PD님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4년차 프리랜서 예능PD로 활동 중인 조해일입니다. MBC예능 <구해줘!홈즈>,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조연출을 맡아 일을 했고요, 현재는 <나 혼자 산다>에서 조연출로 일하고 있습니다.
PD라는 직업도 하는 일이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세분화 되어 있고, 그에 따라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맞습니다. 콘텐츠의 유형과 장르에 따라 PD의 업무가 상이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PD는 촬영, 편집부터 기획과 정산 등 기획과 연출, 제작의 세 가지의 업무를 두루 담당합니다. 반면 드라마의 경우 PD는 제작부에 속해서 현장 관리부터 예산 수립 및 정산 등의 제작 업무를 위주로 수행합니다. 흔히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은 연출부에 있는 별도의 감독님들이 하시죠.
콘텐츠의 규모에 따라서도 PD의 업무가 조금씩 다른데 예를 들어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은 촬영할 때 PD가 직접 촬영하지 않아요. 카메라 운용은 카메라 감독님이 별도로 하시고 PD는 디렉팅 업무를 맡지만, 웹 예능의 경우 규모에 따라 조연출도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맡기도 합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외주 프로덕션을 통해서도 PD가 될 수 있고, 유튜브 시장이 열리면서 공채 출신이 아니어도 PD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조PD님은 어떻게 처음 PD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셨나요?
디지털콘텐츠를 다루는 회사가 많아지기도 했고, 워낙 많은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하다 보니 공채 출신 PD로만 프로그램을 제작하기에는 역부족인 시대입니다. 덕분에 공채를 통하지 않고서도 PD가 되는 길이 더욱 다양해진 것 같아요. 저의 경우 MBC 아카데미에서 PD 과정을 수료했고 거기서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취업 준비를 했어요. 그 후에 MBC 예능 <구해줘! 홈즈>에 지원해서 첫 프리랜서 PD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프리랜서 PD의 매력은 한 회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회사의 프로그램 제작에도 참여할 수 있어서 다양한 제작 방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능력만 있다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서 지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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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일 PD의 편집 영상들



처음 일을 시작해보면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실망하게 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인데 PD님은 어떠셨나요?
사실 저는 예능PD가 되기 전에는 공연 연출가가 꿈이었어요. 현장에서 출연자와 관객들이 소통하면서 실시간으로 얻는 에너지와 감동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런데 예기치 않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공연시장이 어려워지다 보니 진로를 바꾸게 된 거죠. 방송은 집에서 누군가를 앉혀놓고 같이 보지 않는 한 그런 피드백을 얻기가 어렵더라고요. 본방송이 시작되면 인터넷에 실시간 채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는데 그나마 그런 것들을 위안으로 삼아보지만, 텍스트로만 피드백을 받는 건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았습니다. 때론 백 개의 댓글보다 현장에서 받는 한 번의 박수와 함성이 고플 때가 있더라고요.
일하면서 만났던, 나를 당황하게 했던 최대의 변수는 어떤 거였나요?
처음 면접을 볼 때 편집 프로그램을 얼마나 다룰 수 있는지를 여쭤보셨는데 그래도 제가 웬만한 편집 프로그램은 다뤄본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회사에 들어와 보니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편집 프로그램을 써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황하며 몇 주간 손에 익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한 번은 바다낚시 촬영을 했던 적이 있는데 사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낚싯배를 타봤거든요. 3시간 넘게 출렁이는 배를 타면서 입질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해가 다 져서야 뭍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모든 제작진, 출연진분들과 촬영 대본을 공유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고기들과는 공유하지 못해서 변수가 많았어요. 모두가 당황했지만, 그런대로 웃긴 그림들이 많이 나와서 방송도 재미있게 나간 것 같습니다. 이런 게 PD의 매력인 것 같아요. 매일 틀에 박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늘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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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참견 시점>의 현장 촬영 장면



아무래도 방송일이라는 게 9 to 6로 일하는 회사원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만큼 업무강도도 셀텐데, 그렇기 때문에 저연차 때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는 동료들도 많이 봤을 거 같아요.
PD가 힘든 직업이라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어요.(웃음) 처음 막내 PD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일주일 중 쉬는 날 하루 빼고는 거의 잠을 못 잤어요. 그나마 여유가 있는 날은 하루에 2~3시간 정도 잘 수 있었지만, 그때도 막내를 찾는 연락이 많아서인지 불안감 속에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야 그나마 회사랑 집이 가까워서 다행이었지만 어떤 팀의 막내는 회사에 캐리어를 끌고 오기도 했어요.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 쉬는 날에만 잠깐 집에 다녀오는 거죠. 그런 탓에 한두 달 버티다가 그만두는 PD들이 꽤 많습니다.
어떤 점들이 PD님을 지금까지 버티게 해주었나요?
방송이 참 신기한 게 매주 본방송이 나가고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보면 기억이 미화돼요. 가끔 다른 직장인들을 보면 자신의 업무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서 답답해하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방송은 명확해요.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바로 나오거든요. ‘이번 주도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웃고 좋은 영향을 받았구나.’ 생각하며 보람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다음 주도 버티게 할 힘이 생기곤 하죠. 그러다 보니 어느덧 4년 차 PD가 되었네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제가 육군 장교 출신이거든요. 체력적으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방송국에 와보니 그동안 기른 체력이 무색해질 정도로 힘든 거예요. 그런데 회사에 다니다 보면 저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겉으로는 약해 보이는 분들을 종종 마주치게 되는데 그분들이 저보다 더 오래 버텨온 선배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부끄러워서 더 악으로 버틴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생방송을 제외하고는 녹화프로그램을 얼마나 재밌게, 완성도 있게 만드느냐는 편집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편집하다 보면 금세 잘 끝나는 프로그램도 있고, 어떻게 편집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아지는 프로그램도 있을 텐데 어떤 차이인가요?
프로그램마다 천차만별이지만 관찰프로그램의 경우는 특히 출연자의 캐릭터가 분명할수록 편집도 쉽고 재미있게 잘 풀리는 것 같아요. 최근 <나 혼자 산다>에 가수 박지현 님이 출연했는데 훤칠하고 깔끔한 외모에 비해 사람 냄새 가득한 반전 면모를 보여주어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이렇게 돋보이는 캐릭터는 스튜디오에서 패널들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지게 되고 그런 토크들이 출연자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줘서 콘텐츠가 재미있어지게 되거든요. 반면에 출연자의 캐릭터가 명확하지 않으면 스튜디오에서 패널들도 어떻게 리액션 해줘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게 돼요. 그래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편집으로 캐릭터의 방향을 명확히 짚어줘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조연출들이 많이 고민하게 되죠.

그런 면에서 <구해줘! 홈즈>에서 일했을 때는 늘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 프로그램에서는 집이 곧 주인공인데 사실 집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서 말을 안 하잖아요. 그래서 주인공인 집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기위한 편집 역량이 상당히 요구됐죠. 그리고 예능이지만 어느 정도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사실 검증을 위해 부동산 관련 공부도 많이 해야 했어요.
예능에 출연하는 많은 연기자, 그중에서 경험이 많지 않은 신인들의 경우 어떻게 해야 편집 당하지 않는지 고민이 많을텐데, 편집 하는 입장에서 ‘이런 장면 만큼은 절대 편집 안 된다!’하는 게 있을까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재미도 중요하지만, 출연자의 인성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해요. 재미있다고 호평받는 출연자들도 한순간의 실수로 논란이 생기곤 하잖아요. 출연자가 잘돼야 나중에 또 모셔서 같이 방송을 만들 수 있어서 제작진들도 출연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요. 그 때문에 아무리 재미있는 행동이나 멘트를 해도 그것이 남을 과도하게 비방하거나 선을 넘는 정도라면 출연자를 위해서라도 대부분 편집합니다. 선을 넘었다는 기준은 방송사마다 다르게 여기지만요.
프로그램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정말 많은 스태프들이 함께 작업하는데, PD일을 하기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덕목도 인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성이 좋은 PD들이 다른 스태프들하고도 원활하게 잘 소통하는 모습들을 자주 봤거든요. 그다음에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결단력인 것 같아요. 처음 촬영을 나갔을 때 모든 감독님이 저를 쳐다보면서 “PD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시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첫 촬영이라 구성안을 보면서 이미지트레이닝을 꽤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는 PD가 결단력 있게 디렉팅을 해줘야 스태프분들도 신뢰하고 일하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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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 작업 장면



예능PD말고 관심있는 분야도 있으신가요?
드라마와 뮤지컬, 그리고 작곡을 정말 좋아합니다. 코로나19가 심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등급이 높았을 때는 OTT에서 유행하는 드라마는 거의 다 봤을 정도로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요. 지금도 새로 나오는 드라마들은 꾸준히 챙겨보고 있고요. 뮤지컬과 작곡도 무척 좋아해서 대학생 시절에는 제가 작곡으로 참여해서 학생뮤지컬을 몇 편 만들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이 너무 바빠서 공부 위주로 하고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분명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나중에 뮤지컬 등 공연 연출이나, 드라마PD 등을 하게 됐을 때 피가 되고 살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일하면서는 어떤 것들을 제일 많이 배운 것 같나요?
영상 문법에 대한 이해도는 확실히 높아진 것 같아요.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떤 부분을 집중해서 조명하는가에 따라서 스토리의 내용이 달라지잖아요. 영상은 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최고의 콘텐츠인 셈이죠. 카메라로 보여주고 싶은 것만 찍으면 되니까요.

그래서 만약 제가 뮤지컬 제작과 다시 인연이 생긴다면 뮤지컬 공연을 방송으로 만드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을 하면서 늘 아쉬웠던 게 바로 한정된 관객 수였거든요. 더욱 많은 시청자에게 공연에서 얻는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공연을 있는 그대로 찍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겠죠. 공연과 영상은 문법이 아예 다르니까요. 공연에서 매력적으로 빛나는 요소들을 영상 문법에 맞추어 고스란히 가져오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렌트>를 폭스TV가 영상화했던 사례는 매우 좋은 참고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면서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연기자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일할 때 민우혁 배우님과 김남희 배우님, 그리고 이정현 배우님과의 기억이 많이 남아요. 특히, 뮤지컬을 좋아하는 저로서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민우혁 배우님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 공연하는 영상을 편집했었는데 성덕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죠. 스튜디오 녹화가 끝나고 멋있게 잘 만들어주셔서 고맙다는 한마디가 무척 힘이 됐어요. 김남희 배우님과 이정현 배우님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너무 감명 깊게 연기를 하셔서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세상 스윗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연기를 정말 잘하시는구나를 새삼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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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일 PD의 영상 편집본과 작업 화면



앞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스태프, 연기자 포함) 어떤 PD로 기억에 남고 싶으신가요?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실력 있는 PD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PD가 실력이 있어야 스태프분들이 고생하지 않고, PD가 실력이 있어야 출연자분들이 믿고 자신감 있게 촬영에 임하는 것 같아요. 특히, 프리랜서 PD에게는 더더욱 실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실력이 없으면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없을 테니까요. 하루빨리 실력을 더 키워서 어디서든 환영받는 PD가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한 마디
가끔 시청자들이 “안 그래도 요즘 우울했는데 이번 방송 보고 많이 웃었다.”라는 피드백을 종종 남기십니다. 앞으로도 출연진, 제작진분들과 열심히 노력해서 삶에 웃음과 희망 한 스푼 보태는 예능PD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제 곁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프로그램을 만드시는 조연출 선후배님들 정말 존경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