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칼럼

지금의 위기가 과연 넷플릭스 탓, 배우 몸값 탓일까

국내 드라마업계가 당면한 문제점

정덕현 문화평론가

KoBPRA WEBZINE WRITE.S vol.86

최근 국내 드라마업계에서는 여기저기 한숨 소리가 가득하다. 제작비의 전반적인 상승과 편성 축소로 드라마 제작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잘 나가는 K콘텐츠의 위상과는 정반대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K드라마의 성공과 그 후유증

국내 드라마 제작산업에 있어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한 성공은 여러 모로 큰 사건이었다. 253억원의 제작비로 넷플릭스가 가져간 경제적 수익이 무려 9억 달러(약 1조 2천억원)에 달했다는 사실은 국내 드라마업계에는 양면적인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 K콘텐츠의 영향력과 위상을 높였다는 점에서는 기뻐할만한 일이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제대로된 수익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건 아픈 가성비 콘텐츠로서의 K콘텐츠가 가진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넷플릭스측도 여기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을 거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그건 시즌2를 통한 보상이었다. 시즌2 제작비는 주연 개런티를 제외하고 무려 1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물론 거기에서 상당부분은 대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황동혁 감독의 지분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금껏 역대 최대 제작비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 시즌1에 의해 주가를 높인 주연배우 이정재의 몸값은 회당 10억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오징어 게임2>는 그래서 드디어 한국드라마의 제작비가 1천억원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하나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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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실제로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성공 이후 몇 년 간 K콘텐츠 제작비는 수직 상승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는 시즌1,2를 통틀어 총 700억 대작으로 회당 제작비가 35억원 이상이었고, 역시 넷플릭스에서 방영될 한재림 감독의 첫 시리즈 <머니게임> 역시 회당 제작비가 30억 원에 이른다. 디즈니+에서 공개 예정인 송강호 주연의 시리즈 <삼식이 삼촌>은 10부작에 400억 원이 투입됐다. 회당 제작비가 무려 40억 원에 달하는 셈이다. 10년 전 평균 회당 제작비가 3억 7000만 원 선이었던 걸 떠올려 보면 거의 10배에 가까운 제작비의 상승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700억이니 심지어 1천억원이니 하는 제작규모가 엄청난 것처럼 여겨져도 회당 제작비가 100억원에 달하는(심지어 200억원이 넘는 작품도 적지 않다) 해외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소소해보일 정도로 가성비가 높다는 점이다.

그만큼 한국드라마에 대한 제작투자 규모가 커진 것이니 좋은 일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건 어찌 보면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에 투자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제작사들에게는 좋은 일일 수 있으나, 그럴 수 없는 제작사들에게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티빙이나 웨이브 같은 토종 OTT들이 K콘텐츠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글로벌 OTT들처럼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결국 적자폭이 누적되면서 오리지널 제작은 물론이고 편성 규모를 대폭 줄였던 작년부터 현재까지, 제작사들은 자금이 돌지 않아 도산 직전에 몰리는 위기를 겪었다.



제작비는 오르고, 편성은 줄고...
이러다 다 죽는다는 관계자들

몇몇 중소 제작사들은 제작을 다 마치고 난 후, 편성이 일방적으로 취소됨으로써 배우들 출연료는 물론이고 스텝들 인건비까지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드라마 제작의 관행 상 제작사가 선투자해 드라마를 만들고 이를 편성하면 이후 후지급된 제작비로 비용들을 충당해가는 구조인지라, 이러한 갑작스런 편성 취소는 제작사들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OTT와 연동되는 글로벌 시장이 열리면서 그 시장에도 통하는 톱배우, 스타작가, 감독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졌고 따라서 그들의 몸값도 치솟았다. 특히 배우들의 몸값은 회당 1억도 많다고 했던 시절이 언제였냐는 듯, 회당 4억은 기본이고 6억, 7억까지 급상승했다. 16부작 드라마에 7억 출연료를 받는 배우 하나를 쓴다면 그것만도 100억이 훌쩍 넘어가는 제작비가 요구되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 제작비를 써도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그만한 수익을 낼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온다면 그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이 결국 이런 출연료와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으로만 쏠리게 되는 ‘머니 게임’이 된다는 것이고, 그 곳을 통과한 몇몇 제작사나 톱배우, 스타작가, 감독만 살아남는 양극화를 만든다는 점이다.

특히 배우들의 출연료의 경우는 한 번 올라간 금액을 떨어뜨려 작품 계약을 하는 일은 흔치 않다. 즉 글로벌 OTT에서 높은 출연료를 받은 일부 배우들은 토종 OTT나 방송사들에도 같은 급의 출연료를 요구한다. 쓸 수 있는 제작비가 한정된 토종 OTT나 방송사들의 경우, 주연급 배우의 출연료 쏠림 현상이 생겨난다. 이건 결국 드라마 완성도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드라마는 주연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다양한 조연, 엑스트라들과의 앙상블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0명의 조연들에 들어갈 비용이 줄어들어 5명만 쓰게 되면 작품은 앙상해질 수밖에 없다.



K드라마의 상생, 누구 탓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론 이러한 일부 톱배우들의 출연료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조정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즉 제 아무리 높은 출연료를 받았다고 해도, 그로 인해 제작 자체가 줄어들어 출연 기회 또한 줄게되면서 톱배우들의 출연료도 낮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시장이 해결해줄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조정되고 흘러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희생들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꽤 많은 중소 제작사들이 이 다이내믹한 시장의 변화 속에서 문을 닫을 수 있고, K콘텐츠도 그만한 비용을 요구하는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희생을 최대한 줄이고, 드라마 제작업계가 치를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건 고민해야 하고 상생을 위한 협력 또한 해나가야 한다.

가장 위험한 건 이러한 위기를 누구 탓 하나로 돌리는 일이다. 이를 테면 현재의 한국 드라마가 마주한 이 위기가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 탓이라고 단순하게 몰아가는 방식은 너무나 게으르고 위험한 생각이다. 그건 이미 열려 우리 또한 K콘텐츠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시장에 몸 담고 있고 그래서 넷플릭스와 앞으로도 계속 상생의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을 버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문제는 넷플릭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갑작스레 열린 글로벌 시장 앞에서 너도 나도 글로벌 콘텐츠 러시에 뛰어들다 거품이 생겨버린 국내 콘텐츠 시장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글로벌 OTT들에 요구할 건 요구하면서도 국내 제작사들이 이 변화된 환경에 살아남을 수 있는 뉴노멀의 룰들을 OTT관계자는 물론이고 제작사들 또 정부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몇몇 톱배우들의 고액 출연료 탓으로만 몰고가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출연료 문제가 워낙 민감하고 대중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마치 이 모든 위기가 거기서 비롯되는 것처럼만 비춰지고 있는데, 이러한 성급한 일반화보다는 각 작품들의 성격에 따라 거기에 합당한 출연료인가를 들여다보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배우들 역시 작품의 성격에 따라 출연료를 탄력적으로 생각하는 아티스트적인 선택이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진정한 품격을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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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고,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