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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산업 참여자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위하여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KoBPRA WEBZINE WRITE.S vol.81

1. 연기자와 감독

방실협의 노력
방송실연자는 오래 전부터 저작권법 개정을 주장해왔다. 2011년 김을동 의원 대표발의안, 2020년 이규민 의원 대표발의안이 기억난다. 방실협이 발주하여 2011년에 간행된 연구보고서 “시청각실연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도 눈에 띈다.
오래 전에 영상저작물 특례 규정을 개정하자는 방실협 주최 세미나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저작인접권자의 권리가 저작권을 앞 설 수는 없다. 영상저작물 특례 규정을 개정하려면 적어도 영화감독들과 보조를 같이 해야 한다.” 주최측으로는 듣기 불편한 이야기였을 게다.


감독의 목소리
5,6년 전에 영화감독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문체부 영상과 사무관, 몇몇 감독, 시나리오 작가들과 영화감독협회 사무실에 모였다. “30년 전부터 감독협회 이사장 선거에서는 ‘감독의 저작권 확보’가 주제였는데, 선거 이후 당선자가 입법 로비를 하거나 입법 자료를 만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중견 감독이 계면쩍어 하며 설명했다.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면 제작자로 변신합니다. 스타 감독이 제작사 대표가 되니 감독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기는 힘듭니다.” 지난 30년간 품고 있던 의문이 풀렸다.

그 자리의 감독들 사이에서 ‘감독이 영화의 저작자(author)인가’로 설왕설래가 있었다. 감독들 스스로 영화의 저작자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듯하여, ‘영화의 저작자는 감독이고 감독이 확보한 저작권이 후발적으로 제작자에게 양도 추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저작권법은 더욱 강력하게 영화제작자에게 권리를 몰아주지만, 감독들이 조직을 만들고 오랫동안 제작자들과 협상하여 권리를 확보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감독에게 저작권법상의 권리는 전혀 없으나 힘을 모아 제작사와 협상하여 권리를 얻었다고도 전했다.

영상저작권 특례 규정을 개정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영상저작물 특례규정 개정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고 많은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니 우선 영화감독들이 스스로 영상저작물의 저작자(author)라는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영화의 창작자가 누구라는 규정을 넣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그 규정을 근거로 감독들을 불러 모아 제작자와 협상을 하라는 뜻이었다. 문체부 영상과는 우호적이었으나 저작권과에서 반대했던 듯하고,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지난 늦여름에 “국회 모인 천만 영화 감독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배우 유지태의 사회로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천만 영화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 정책토론회가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스타감독들이 뉴스 카메라 앞에 도열했으니 바야흐로 분위기가 익어갈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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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정한 분배론 논의

유럽의 대여권 지침

현대사회에서 계약은 자유롭고(계약자유의 원칙), 계약은 이행되어야 한다(Pacta sunt servanda). 계약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고 계약내용을 함부로 바꿀 수 있다면 자유경제 원칙이 무너진다. 그런데 드물게 그러한 계약 원칙에서 비껴가는 경우가 있다.

‘권리 이전 후의 보상’에 대해서는 유럽에서 1992년 대여권 지침이 처음 규정한 듯하다. 유럽법의 ‘지침(directive)’은 ‘입법지침’을 뜻한다. 비디오테이프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자 비디오테이프 대여라는 신종 비즈니스가 생겼고, 이에 대하여 저작자와 실연자에 대한 추가보상을 규정한 지침이 대여권 지침이다. 대여권 지침은 영화제작자와 감독계약, 출연계약을 하면 대여권이 제작자에게 이전되는 것으로 추정하면서도(presumed to be transferred)(제2조 제5항, 제6항), 저작자와 실연자에게 상당한 보상청구권(equitable remuneration)을 인정한다.(4조 제1항), 상당한 보상청구권은 감독이나 실연자에 의해 포기될 수 없는(unwaivable) 강행규정(제4조 제2항)이고, 그 관리는 집중관리단체(collecting societies)에 위탁할 수 있다(제4조 제3항). 회원국은 집중관리단체에 의한 상당한 보상청구권의 관리를 의무화할지 여부, 어느 범위에서 의무화할지, 보상청구권의 상대방을 누구로 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제4조 제4항).


디지털단일시장지침 – 비례적 보상 및 추가보상청구권

2019년 6월 7일 유럽연합 디지털 단일 시장 지침(Digital Single Market Directive)이 발효하였다. 디지털 단일시장 지침에서는, 저작자와 실연자가 배타적 권리를 양도하거나 이용권을 설정할 경우 적정한 비례 보상(appropriate and proportionate remuneration)을 보장하라고 규정한다(제18조). 이용허락을 하였거나 권리를 양도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가 매출에 비해 현저히 균형이 맞지 않으면(disproportionately low compared to all the subsequent relevant revenues) 저작자와 실연자는 계약상대방 혹은 권리 양수인(successors in title)에게 추가 보상(additional, appropriate and fair remuneration)을 청구 할 수 있다(제20조).


베이징조약의 발효

2012년 성립한 시청각 실연에 관한 베이징조약(Beijing Treaty on Audiovisual Performances)은 서문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융합이 시청각 실연의 생산과 이용에 지대한 파급효과를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베이징조약은 30개 회원국이 비준서나 가입서를 WIPO 사무총장에게 기탁한 때로부터 3개월 후에 발효할 예정이었고, 2020년 1월 28일 인도네시아가 30번째로 비준하여 조약의 발효요건이 충족됨으로써 2020년 4월 28일 발효하였다. 우리나라도 2020년 4월 22일 WIPO에 가입서를 기탁하여 국내에서도 적용되게 되었다.

베이징조약은 첫째, 회원국이 시청각 고정물에 고정된 방송권과 공중전달권의 ‘배타성’을 포기하는 대신 체약국이 입법으로 상당한 보상(equitable remuneration)과 그 내용을 규정할 수 있고(제11조 제2항). 둘째, 시청각 실연자의 배타적 권리의 ‘이전’과 독립적으로(independent of the transfer of exclusive rights) 실연의 어떠한 이용에 대해서도(for any use of performance) 사용료 또는 상당한 보상금을 받을 권리(the right to receive royalties or equitable remuneration)를 인정한다(제12조 제3항).

베이징조약의 국내 발효로 우리나라 시청각 실연자는 조약이 규정하는 “배타적 권리의 이전 후에도 상당한 보상(equitable remuneration)을 구할 권리”에 대한 입법을 적극적으로 촉구할 수 있는 입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2022년 영상저작물 특례규정 개정안 – 감독조합의 개정안, 방실협의 개정안

2022년 감독조합의 입장은 두 건의 저작권법 일부개정안으로 제출되었다(유정주案, 성일종 案; 두 개정안은 사실상 차이가 없다). 조문을 100조의 2로 하여, 수익에 비례한 보상을 보장하고, 보상의 대상을 ‘감독, 작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로 하며, 보상청구의 대상을 ‘영상저작물 최종제공자’로 하였다.

영상저작물 특례규정은 감독과 실연자의 권리를 제작자에게 양도추정할 뿐 ‘작가의 권리’를 박탈하지는 않는다. 저작권법에서 작가의 권리에는 영향이 없다고 확인하고 있기도 하다(제100조 2항). 따라서 작가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영상저작물 특례규정을 개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상물의 창작자의 범주는, 저작권 제2조 제2호 ‘창작자주의’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데, 그 결정을 ‘대통령령’으로 떠넘기는 모습도 원칙에 반한다. 무엇보다 청구의 상대방에서 제작자를 배제한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다수 법학자들이 유정주案 성일종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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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실협이 마련한 2022년 개정안은 2011년의 김을동 의원 대표발의안과 크게 틀리지 않는다. 감독조합의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조문을 100조의 2로 하면서 감독의 권리와 실연자의 권리를 함께 묶어 개정하고자 한 점이 큰 변화이다. 2022년 개정안은 100조의 2, 제1항을 이렇게 규정하였다. “① 제100조 제1항에 따라 영상저작물의 이용에 필요한 권리를 양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저작자와 제100조 제3항에 따라 복제권 등을 양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실연자는, 영상저작물 제작의 목적이 된 최초 이용을 제외한 영상저작물의 각 이용에 대하여 영상제작자 또는 영상제작자로부터 영상사업을 위한 권리를 양도받거나 이용허락을 받은 자(이하 ‘이용사업자’라 한다)에게 상당한 보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방실협의 개정안에도 검토할 부분이 있다. 현재 영상물의 제작환경에서 ‘영상저작물 제작의 목적이 된 최초 이용’의 범주를 어떤 식으로 특정할 수 있을지는 고민스럽다. 이미 2011년 김을동 의원 제안에 대해서 국회 전문위원도 그 점을 지적하였다. 청구의 상대방을 제작자로 특정할 것인가, 제작자 외에 ‘이용사업자’로까지 확대할 지도 논쟁적이다. 김을동 의원 제안에서는 범위를 확대하였고(‘그 밖에 그 영상저작물에 대하여 저작재산권을 행사하는 자’), 국제적으로 확대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민법 체계와의 관계에서 ‘일반론으로’ 확대가 가능할지는 여전히 연구가 필요하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학교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U'of Penn) 로스쿨을 졸업하고, 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저작권위원회 부위원장, 대한변협 공보이사 등을 맡았다. 변호사로 20수년 일하다가 로스쿨 교수로 전직하였다. 변호사, 본회 사외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