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오래 걸어왔고, 다시 걸어가야 할 길

연기자의 삶을 지키는 정당한 권리를 꿈꾸며

차영남 배우/작가

KoBPRA WEBZINE WRITE.S vol.81 

연기의 시작

배우라는 직업을 막연하게 꿈꾸며 상경했던 날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 포털 사이트에 연기학원을 검색하고 맨 위에 뜨는 학원을 등록했다. 주말마다 서울과 대전으로 오가며 수업을 받고, 보조출연으로 드라마 현장에도 종종 갔다. TV에서만 보던 배우들을 실제로 보면서 가슴이 뛰고 치열한 현장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학원에서 연습한 긴 독백과는 달리 현장에서는 딱히 하는 일 없이 길을 걷거나 교실에 앉아있는 게 대부분이었고, 혹여나 카메라에 한 번 잡힐까 힐끔힐끔 렌즈를 쳐다보다가 혼나기도 했다.
그렇게 보조출연자로 시간을 보내다 독립영화를 한 편 찍게 되었는데, 그때 출연 계약서라는 걸 처음 썼다. 물론 당시 학원 선생님이 다 알아서 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옆에 앉아서 이름 석 자를 적은 것 말고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계약서를 쓰고 나니 이제 정말 배우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대학 생활과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일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인터넷으로 찾은 제작사를 돌아가며 ‘프로필 투어’를 하고, 오디션 정보 사이트에 지원서를 제출하면 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프로필 투어가 어떤 건지 몰랐을 땐 혼자 하는 게 두려워 괜히 친구를 불러 같이 돌아다녔다. 제작사 사무실 앞에서 온갖 상상을 했다. 노크하고 들어가 프로필을 전달하는데 갑자기 오디션을 보자고 하지 않을까, 마침 사무실에 감독님이 계셔서 바로 미팅을 하지 않을까 김칫국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대대분의 현실은 “업무 중이니 문 앞 박스에 프로필을 놓고 가세요”라는 문구를 보고 돌아가는 일이 전부였다.


출연 계약서, 종이 한 장에 담긴 권리

그다음엔 광고를 노렸다. 광고 업계는 에이전시에 영상 프로필을 남기면 나중에 어울리는 역할이 있을 때 연락이 오는 시스템이었다. 하루는 정장을 입고, 다음엔 머리를 올리고, 어떤 날은 원색의 맨투맨을 입어가며 다양한 이미지를 제출하고 연락을 기다렸다.
광고는 계약서를 쓰는 일이 잦았다. 광고가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노출되는지, 흔히 '묶인다, 안 묶인다'라는 표현을 언급하며 동종 업계의 광고 촬영을 금지하는 조건 등의 규칙이 있었다. 계약을 위반할 경우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조항을 보고 괜히 겁이 나서 계약서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고마다 계약 조건이 모두 다르고, 종종 급하게 연락이 와 당장 다음 날 촬영을 할 때는 아무런 조건조차 물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름에 감사하며 출연료나 계약 기간도 모르고 촬영하는 일도 허다했다.

그렇게 광고 촬영을 몇 번 하다 보니 무턱대고 계약을 수락하기 전에 조건을 물어볼 용기가 생겼다. 구체적인 촬영일과 노출 시기와 기간, 의상이나 헤어&메이크업은 준비되어 있는지, 주차 공간은 있는지, 없다면 주차비는 청구가 되는지, 식사 제공 여부 등 추가로 비용이 지출될 만한 사항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물었다. 그런 질문이 꽤 귀찮다는 듯한 말투로 답변을 듣는 일도 많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출연료에 기타 지출 비용이 많으면 지속적으로 일하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다. 먼저 그런 사항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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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배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가 비슷한 일을 경험했을 것이다. 직업 특성상 선택을 받는 입장인데다 특정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은 개인이거나 무명일수록 더 빈번하게 경험했을 것이다. 시청자나 관객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직업이면서 동시에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일이기에 어떤 일이 좋은 기회가 될지 몰라 원하는 조건을 쉽게 얘기하지 못한다. 여전히 시켜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는 사람이 많은 탓도 있다.

연기자가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이전 선배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개인의 권익을 보호해주지 못하던 시절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선배들은 출연한 작품이 계속해서 재사용되거나 혹은 복제되어 자유롭게 쓰일 때도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실연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달려있는지,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인지하기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연기자 권리 보호 단체

현재 연기자의 근무조건을 교섭하는 단체는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한연노)이 유일하다. 1988년에 설립된 한연노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이순재 선생님을 필두로 1994년에 저작권법 개정을 시도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연기자가 자신이 참여한 작품의 정규 방송 이외 복제, 전송에 관한 권리는 모두 영상 제작사에게 양도되는 시스템이었다. 많은 시도와 우여곡절 끝에 1994년 “특약이 없는 한”이라는 문구 하나를 추가하고 개정안이 통과 되었고 5년이 지난 1999년부터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 또한 충분한 권리를 지닌 수준은 아니기에 끊임없이 권리 확보를 위한 목소리를 내야만 했고, 이 후 한연노로부터 독립한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이하 협회)가 지금까지 방송실연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

선배님들의 그러한 노고 덕분에 방송실연자의 저작인접권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담긴 계약서를 받을 수 있게 된 지금이지만,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여전히 이러한 과정에 대해 아는 연기자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협회에 가입하면 재방송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가입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나 또한 협회 대의원이 되기 전까진 협회에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알지도 못했고 잘 알지 못했기에 큰 관심도 없었다. 여전히 아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협회가 방송실연자가 무분별하게 이용 당하는 것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연기자의 삶을 지키는 권리

우리가 재방송료를 받는 데 만족하지 않고, 연기자의 인접저작권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연기 활동을 하다보면 불합리한 조건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나 제작사, 에이전시 등과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꼼꼼히 보는 것이 다소 민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계약 조건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일을 면밀히 살피려는 노력이지 상대를 의심하는 일이 아니라 여기면 어떨까. 수억 원 짜리 집을 계약할 때 계약서를 꼼꼼하게 보는 일을 민망하게 느끼지 않는것 처럼 말이다.

그런 이유로 서로가 공유하려는 정보에 대해 미리 인지할 수 있는 정보나 교육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약서를 처음 써보는 사람, 방송에 처음 출연하는 사람, 혹은 방송에 종사하기 위해 꿈을 꾸고 있는 사람도 미리 접할 수 있는 기본 자료가 있다면 그 정보를 기준으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글로벌 플랫폼 확장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는 방송국만 아니라 OTT 시장을 비롯해 웹드라마, 오디오 드라마 등이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다양한 협업으로 인해 하나의 콘텐츠가 여러 곳에서 재생되기도 한다. 더욱 복잡해진 시스템 속에서 방송실연자들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권리를 지녀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꽤 힘든 발걸음이었겠지만 이제 또다시 시작해야 한다. 멀고 먼 여정이 되겠지만 협회를 기반으로 선후배가 힘을 합쳐 정당하게 권리를 얻고 편안한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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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남

배우/작가 @chayoungnam

연기하고 글 쓰고 커피를 내립니다. 타인의 질타를 두려워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이 더 크기에 계속 살아갑니다. 자주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서서 움직이는 것이 유일한 재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