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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환경의 재편과 방송 콘텐츠 향유의 변화

이진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KoBPRA WEBZINE WRITE.S vol.79

수동적 수신자에서 능동적 사용자 시대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디바이스와 콘텐츠, 수용자를 아우르는 다층적 변화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매스미디어의 총아로서 TV는 거실의 중심을 차지했다. TV는 가정의 거실이라는 장소에 귀속된 가족 중심의 디바이스였다. 전파를 통해 일방향적이고 선형적으로 콘텐츠를 전송하는 방송은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구성하는 편성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기존에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논할 때 디바이스와 콘텐츠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청자가 공급자 중심의 시간과 공간의 논리에 종속되는 수용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수신자의 방송 콘텐츠 향유란 곧, 송신자가 의도한 것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이 방송이 중심이 되었던 매스미디어의 시대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미디어, OTT와 같은 플랫폼 서비스의 보편화와 함께 개인 미디어 시대로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개인 미디어 시대, 변화를 견인하는 핵심에는 능동적인 시청자로서 사용자(user)가 있다.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형태로 향유하기를 원한다. 더불어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OTT의 등장은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허문 동시에 콘텐츠 형식과 내용에도 변화를 가지고 오고 있다.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는 일견 디바이스와 플랫폼의 변화가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기호와 취향을 중심으로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향유하는 시청자 또한 변화의 한 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능동적인 사용자로서 시청자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재가공형 숏폼 콘텐츠의 부상

방송에서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재가공형 숏폼 콘텐츠의 부상이다. 본방송 콘텐츠를 재구성하거나 재편집하는 재가공형 숏폼 콘텐츠는 예고나 하이라이트, 클립 영상과 같이 부가적인 콘텐츠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현재 네이버TV나 유튜브의 각 방송사 채널을 통해 서비스되는 재가공형 숏폼 콘텐츠는 부가나 보완이 아닌, 대체재로서의 기능하고 있다. 본방송이 방영되는 동시에 십여 분의 시간 차이를 두고 10분 내외로 분절된 영상이 업로드되고, 미방영분이나 다양한 콘셉트의 기획 숏폼 콘텐츠 또한 함께 업로드된다. 시청자는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골라보거나, 좋아하는 출연자가 나오는 장면을 반복해서 시청하기도 한다. 심지어 과거에 방영되었던 방송분이 화제의 출연자를 중심으로 재구성되거나, 과거 방영분의 요약분이 업로드되기도 한다. 이처럼 롱폼 콘텐츠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방송 콘텐츠는 웹 기반의 숏폼 콘텐츠로 그 범주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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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유투브 & 네이버TV 웹사이트



스토리 위주에서 캐릭터 중심으로

웹 기반의 숏폼 콘텐츠에서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캐릭터(출연자)이다. 기존의 롱폼 콘텐츠가 전체의 스토리를 향유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숏폼 콘텐츠를 향유하는 시청자들은 전체를 소비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전체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의 하나다. 부분으로서 숏폼 콘텐츠를 분절하는 메커니즘의 중심에는 캐릭터가 자리 잡고 있다. 출연자를 중심으로 동일한 장면이 재구성되거나, 콘텐츠 속 출연자 간 관계를 기반으로 맥락이 부여되기도 한다. 시청자에게 이와 같은 재가공형 숏폼 콘텐츠가 보여 주는 부분 변주는 분명히 독립적인 콘텐츠로 인지되며, 시청자는 반복적이고 선택적인 향유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소재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즐긴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재가공형 숏폼 콘텐츠의 위상 변화라는 현상의 기저에는 앞서 언급한 능동적인 시청자, 사용자의 위상 강화가 있다. 수동적이고 일방향적으로 방송 콘텐츠를 수용하던 시청자에서 능동적이고 양방향적으로 콘텐츠를 향유하는 시청자로의 변화이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형태로 즐길 수 있게 된 시청자는 더 이상 ‘본 방송’이라는 전파의 구속에 연연하지 않는다. 본방송과 재방송이라는 방송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강력한 규칙은 해체되고 있으며, 나아가 전체를 오롯이 소비하는 것이 당연하던 콘텐츠 향유의 전제 또한 해체되고 있다. 기실 롱폼이라는 개념은 통용되지 않았던 개념이다. 숏폼의 정착과 함께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방송콘텐츠는 텔레비전과 전파라는 물리적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 콘텐츠의 형식 또한 해체와 재구성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캐릭터를 중심으로 향유하는 숏폼 콘텐츠는 시청자의 새로운 향유 양태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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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콘텐츠 선순환을 위해 앞으로의 과제

방송 환경은 변화했고, 그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콘텐츠 생산자로서 제작의 주체들 또한 직간접적으로 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콘텐츠의 변화는 필연적이며, 바로 그 지점에 숏폼 콘텐츠가 있다. 재가공형 콘텐츠가 서비스되고 네이버TV에는 TV 방송보다는 유튜브와 같은 웹 플랫폼과 동일한 형태의 광고가 제공된다. 시청률에 기반한 광고 구간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형태로 방송 콘텐츠를 향유하기 위해 광고를 시청해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이미 제작된 방송 콘텐츠를 집약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제작 비용을 최소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진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과 방송 콘텐츠는 역동적인 변화의 한 복판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주체들을 둘러싼 제도와 시스템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지체 현상이다. 지체 현상은 미국의 사회학자 W.F 오그번(William Fielding Ogburn)이 제시한 ‘문화지체(cultural lag)’현상에서 나온 개념으로, 급속하게 발전하는 기술에 비해 사회와 문화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격차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그번은 이와 같은 변화 속도의 차이에 의해서 과도기적인 혼란이 발생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방송 콘텐츠를 향유하는 방식을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에 비해, 방송 콘텐츠를 둘러싼 주체 간의 권리 관계와 수익 구조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방송국, 제작사, 플랫폼, 출연자 등을 둘러싼 계약 구조와 권리 관계는 새롭게 변화하는 판 위에서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될 때 지속가능한 방송 콘텐츠 생태계를 위한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


이진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부에서 디지털미디어학석사, 융합콘텐츠학과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모바일 게임 스토리텔링>(2020),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이해>(공저, 2015)가 있다. 논문은 “메타버스 개념과 유형에 대한 시론”(2021), “게임 IP 활용에 대한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의 인식 연구”(2021), “숏폼 동영상 콘텐츠의 유형 연구”(2020) 등이 있다. 웹 콘텐츠와 트랜스미디어, 메타버스를 키워드로 연구 분야를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