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KoBPRA

배우
최수종

따뜻한 봄날,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서 만난 그는 짙은 감색 정장에 깨끗한 구두, 세련된 넥타이 차림이었다.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한 권의 책 같았다. 크고 순한 눈망울과 서글서글한 미소, 따뜻한 목소리가 좋은 제목처럼 번졌다.

현우, 사도세자, 철종, 장만봉, 서재필, 이영호, 이광수, 이귀남, 강민기, 이인수, 황산해, 성찬혁, 장보고, 대조영, 무열왕 등 수많은 청춘과 왕과 장군이 그의 얼굴에 담겼다가 빠져나갔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60년을 넘게 산 사람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보이지만 않을 뿐, 그는 그 세월을 한 페이지도 누락시키지 않고 꼬박꼬박 성실하게 살았다.
그를 만나 살아온 세월 몇 페이지를 들춰보았다.

 INTERVIEWER 박여진   PHOTO 백홍기
얼마 전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협회는 어떤 곳이며 맡으신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요?
원래 목적은 연기자들의 자질 향상 및 방송문화 발전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협회도 좀 더 세분화 되었어요. 노조도 생기고, 방송실연자권리협회도 생기면서 우리 방송연기자협회의 목표도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기존에는 친목 활동에 많이 충실했는데 (웃음) 좀 더 다양할 활동을 준비하고 있어요.

일단, 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방송 생태가 크게 달라졌어요. 배우들의 역할과 쓰임도 다양해졌고요. 협회 역시 다양한 방식을 통해 배우들의 사회적 활동 범위를 넓히려고 합니다. 봉사활동을 통한 사회적 공헌도 적극 추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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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친환경 페인트 업체와 MOU를 맺어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독거노인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프로젝트 같은 것들이요. 연기자들이 직접 도배도 하고, 짐도 나르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어요. 또 연기자들이 다양한 재능을 살려 사회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여러 단체와 협업해 연기자의 재능 기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이미 정재순 선생님은 개인전도 여러 번 하실 정도로 그림에 재능이 많으시고요, 하희라씨나 이태란씨도 좋은 뜻에 동참하는 의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도 ‘훈민정음’이라는 작품을 그렸어요.

협회에서 제가 하는 일은 이런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거예요. 이사장이라고 해서 이사장실에 앉아 이사장 명패를 걸고 있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아요. (취임식도 아예 없었지만) 취임하면서 이사장 명패며 회의실, 이사장실 등을 모두 없애거나 편한 분위기로 바꿨어요. 수직적 구조보다는 수평적 구조에서 편안하게 소통할 때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협회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슬로건도 있나요?
네, 얼마전 협회원의 자긍심을 높이고 협회의 상징성과 가치를 고취시키기 위해 ‘창립 50주년 기념 슬로건 공모행사’를 했어요. 취임 후 저의 첫 사업과제이기도 했죠. ‘On 세상을 밝혀주는 한류의 중심’이라는 슬로건이 대상으로 당선되었고, 앞으로 협회의 대외 홍보사업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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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 슬로건 공모 시상 및 공포식' 사진출처: 한국방송연기자협회



배우 최수종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최수종’ 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와 특유의 선량함이 있습니다. 그동안 맡아오신 배역도 늘 의롭고 선한 역할이 많았고요. 물론 거기에는 (누가 봐도 주인공답게 생긴) 외모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늘 맡아오신 역할에 만족하시나요? 기존의 이미지 외에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다른 이미지도 있으신가요?
정말 하고 싶은 역할도 많고, 욕심나는 배역도 많아요. 그런데 언젠가 어느 선배님이 저에게 물으시더라고요.

‘수종아, 먹고 살만 하니?’

‘네.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합니다.’ 그랬더니

‘그럼 악역 안 해도 지장 없겠네.’ 하셨어요.

‘상관없습니다.’ 하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그 선배님이 선배로서 그리고 시청자로서 수종씨가 사회에 주는 좋은 영향력이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우로써의 능력과 자질은 충분하지만 나쁜 역할로 이미지 변신 안 했으면 좋겠다고요. 저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뒤로는 악역 제안이 정말 많이 들어오는데 전부 사양했어요. 제가 연기를 통해 세상에 뭔가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그 방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요.



배우로 사신 지 35년 정도 되셨더라고요. 35년 전 어떤 계기로 처음 카메라 앞에 서게 되셨나요?
부모님 사업으로 외국에 살다가 사업이 망하고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한국에 와서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학생 과외를 하게 되었는데, 그 학생 아버님이 KBS 예능 국장님이셨어요. 국장님의 소개로 처음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게 되었지요.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현우 역할이었죠? 그때 이후로는 줄곧 주연을 맡으며 승승장구하셨고요. 오늘의 최수종 씨가 35년 전 현우를 맡았던 최수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참 열심히 했다. 잘 살았다.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연기활동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늘 일찍 도착해 대본 다 외우고, 선배님들 연기 지켜보고 그랬어요. 오죽하면 방송가 사람들이 ‘최수종 쓰면 펑크는 절대 안 난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대사도 제 분량은 물론 대본집을 통째로 다 외워가며 매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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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셨던 이유가 연기가 좋아서였나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
먹고 살려고요. 그땐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했어요. 처음 한국에 와서 잘 곳이 없어서 고속버스터미널 앞 의자에 누워 점퍼를 덮고 잤어요. 물론 누나에게 연락하면 당연히 절 맞아주겠지만 당시엔 그 말이 참 안 나왔어요.


하지만 데뷔 몇 개월 만에 스타가 되셨잖아요. 그렇다면 먹고 살기 충분한 형편이 되었을 텐데 그 이후로도 정말 매사에 성실하셨죠.
사실 고속버스터미널 의자에 누워 자는데 한 노숙자가 제게 신문지 한 장을 주며 이걸 덮고 자면 따뜻할 거라고 하더군요. 딱 봐도 저보다 훨씬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신문지를 받아든 저는 하늘에 대고 마구 원망하고 소리쳤어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런 기도를 하게 되더군요. 저분도 나에게 따듯하게 덮고 잘 신문지를 주는데 나도 남을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달라고요.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렇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신문지 한 장이 제 삶의 방식을 바꾼 거죠.


연기자가 아닌 방송인으로도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요. 늘 느끼는 건데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으신 것 같아요. 감정이 무척 풍부하고 섬세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풍부한 감정이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성가실 때도 있지 않나요?
어렸을 때부터 감정이 풍부했어요.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영화를 보면 어느새 등장인물이 되어 있죠. 물론 이런 공감 능력이 연기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개인적으로는 힘들 때도 많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요. 하지만 공감으로 인해 생기는 고통은 일종의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불평없이 소명을 다하고 싶어요.


이 질문은 온 국민이 다 아는 내용이어서 어지간하면 건너뛰려고 했는데 아무리 해도 최수종의 사랑 이야기는 건너뛸 수가 없더라고요. 하희라 씨를 향한 극진한 사랑은 성실한 노력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넘치는 자연스러움인가요?
노력이나 자연스러움보다는 그 사람이 하희라이기 때문이죠. 저는 가끔 이렇게 자문해요. ‘과연 하희라 씨가 아니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더라고요. 제 사랑은 하희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랑이에요. 드라마 <프레지던트> (2010년) 때 협찬받은 양복들을 아직도 그대로 입어요. 일주일에 3번은 늘 운동을 하고, 식단도 꽤 엄격하게 관리하죠. 이유는 딱 하나예요. 하희라 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요. 사람들은 늘 의심하는데, 정말로 저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물론 미묘한 신경전이 있을 때는 있어요. 그런데 그런 신경전이 있을 때 무슨 끝말잇기 하듯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 싸움이 되겠죠. 그렇게 싸움으로까지 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렇게 싸우며 살기엔 세월이 너무 빨라요. 감사하게도 아이들도 이런 제 방식을 잘 따라와 주고 있어요. 존댓말을 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를 수월하게 받아들여 주었지요. 크게 속 썩인 일 없이 두 친구 다 잘 해주고 있어서 정말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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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삶의 모든 순간을 필사적으로 열심히 사신 세월이 지금의 최수종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최수종의 모습이 20년 후, 30년 후의 최수종을 어떻게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하희라 씨와도 그런 이야기를 가끔 나눠요. 훗날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게 늙고 싶다고. 우리 부부가 오랜 세월 모델 활동을 하는 아파트 회사가 있어요. 그 업체에 새로 결혼한 스타 부부도 많은데 왜 늘 우리 부부를 모델로 쓰시냐고 물었더니 우리 부부처럼 오랫동안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주는 신뢰감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고 싶어요.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예전에 일반 협회원으로 있을 때는 몰랐어요. 이런 협회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번에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정말 크게 깨달았어요. 실연자권리협회도, 연기자협회도 협회를 운영하는 분들은 정말 애쓰며 노력하고 있거든요. 협회원들이 밖에서 지켜보지만 말고 적극적인 도움과 응원을 주었으면 해요. 그래야 협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어떤 단체든 보이지 않는 노고와 정성이 있다는 걸 알아주고 응원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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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 준비 시간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인터뷰를 마친 후 추가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내내 정중하고 따뜻하고 쾌활했다. 함박눈처럼 펑펑 울고, 폭죽처럼 환하게 웃는 사람. 한 여자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처음 사랑을 고백하듯 눈이 반짝이는 사람, 빈난했던 삶도 신문지 한 장으로 따뜻하게 데우던 사람, 최수종이 채워나갈 나머지 삶의 페이지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