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위드 코브프라

한 편의 드라마,
그 처음과 끝

드라마 제작PD 조혜린

 INTERVIEWER 배우 차영남  
간혹 드라마에 등장하는 '드라마PD'의 역할은 대부분 범상치 않다. 잠을 며칠째 안 자거나, 몇 일 동안 굶기도 한다. 쓰러져도 벌떡 일어나 다시 일하는 마치 로봇 같은 강인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때론 땅을 파기도 하고, 몸 개그를 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제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만능 일꾼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처음과 끝을 진두지휘하는 드라마 제작PD의 현장이 매우 궁금해졌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그 살벌한(?) 현장을 거치며 우리가 열광하는 바로 '그'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조혜린 드라마 제작PD를 배우 차영남이 만났다.

안녕하세요. 조혜린 PD님, 배우 차영남입니다. 최근 근황과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드라마 제작을 하는 조혜린입니다.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 <모범가족>, ENA 드라마 <굿잡> 제작을 마무리하고, 요즘은 올해 하반기에 제작에 들어가는 드라마 <자백의 대가> 외 다수의 작품을 기획 중입니다.
저는 2007년 KBS <마왕>을 시작으로 KBS <드림하이> 1&2, <학교> 2013&2017, <조선로코 녹두전>, <오!삼광빌라>와 OCN <라이프 온 마스>, tvN <하이클래스>, ENA <굿잡>, Netfilix <모범가족> 등을 제작해 왔습니다. 현재 프로덕션 에이치의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의 제작 형태나 플랫폼이 다양화되면서, PD라는 직책이 품고 있는 의미도 매우 광범위해졌습니다.
네 그렇죠. 드라마 PD만 해도 맡은 역할에 따라 세분화됩니다. 우선 우리가 흔히 제작자라고 부르는 드라마 전체를 책임지는 총PD가 있어요. 보통은 제작사의 대표님들이 맡으시죠. 그리고 드라마 제작에 필요한 모든 실무 과정을 총괄하는 총괄PD가 있어요. 제가 맡고 있는 제작PD는 총괄PD와 함께 프로덕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실무를 먼저 수행하게 되죠. 이 외에도 제작PD를 서포트하면서 현장 업무를 맡는 라인 PD와 전체적인 기획 방향과 작가 케어 및 대본 완성과 관련한 실무에 더욱 집중해서 수행하는 기획PD도 있습니다.
PD이 맡고 계시는 드라마 제작PD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우선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한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조율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는 드라마 아이템 선정, 작가나 감독, 배우, 스텝을 캐스팅하고 참여하는 모든 크리에이터와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 제반 사항을 조율하고 서포트합니다. 또한 드라마가 방영된 후의 프로젝트 마무리도 제작PD의 역할에 포함됩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면, 제작에 따라 네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드라마 기획 단계입니다. 아이템을 선정하고 작가와(때에 따라서는 감독도 함께) 소통하며 드라마의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한 방향성을 결정한 뒤 촬영용 대본이 만들어지기까지 서포트를 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단계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인데요. 말 그대로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이죠. 주연, 조연 배우들 섭외부터 촬영 감독을 비롯한 주요 스태프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예산 관리도 이 단계에서 제작PD가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마치면 세 번째로 프로덕션 단계로 들어갑니다. 본격적인 제작이 시작되는 거죠. 이 단계에서는 원활한 촬영을 위한 제반 여건을 마련하고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자의 역할을 진행합니다. 그와 동시에 예산집행과 관리, 촬영 스케줄 조율 등 각 파트에서 진행하는 업무에 대한 관리자로서 역할도 맡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포스트 프로덕션 및 온에어 단계인데요, 완성된 드라마로 송출하기 위한 편집, 믹싱, VFX, 음악 등의 진행이 원활하게 될 수 있게 서포트합니다. 그리고 최종 방송이 되는 채널 및 플랫폼에 제안하는 일까지 수행하게 됩니다.

img82-2

<모범가족>, <굿잡>포스터 / 사진출처. 넷플릭스, ENA



광범위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시는 만큼 조혜린 PD님에게 '드라마 제작PD'라는 역할이 특별할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사실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웃음) 아무래도 제가 맡은 일이 감독이 배우들처럼 전면에 나서기보다 그들을 서포트하고 정리하고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역할이 많다 보니 가끔은 서운하기도 하고 속상한 일을 겪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저에게 PD라는 역할은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참여하신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에겐 KBS 드라마 <드림하이> 1,2편을 제작한 2012년이 열정으로 가득 찬 시기였어요. 당시 입김이 나오는 열악한 세트장 안에서 연기자와 제작진 모두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고생하며 촬영했던 일이 잊히지 않아요. <드림하이>는 음악과 춤이 등장해서 여느 드라마와는 달리 준비할 것들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해서그런지 어느 작품보다 열심히 했던 것 같고 그래서 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2018년 정말 더웠던 여름, 7월의 부산에서 촬영했던 OCN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때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여름에 가죽 코트를 입고 연기를 했던 정경호 배우도 대단했어요.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덥고 힘들었던 날씨였거든요. 정리하다 보니 덥거나 춥거나 가장 원초적인 감정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네요. (웃음)
img80-2

<라이프 온 마스> 정경호 배우 / 사진출처. OCN




제작PD로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정답이 없는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고민과 결정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특히 당시 내린 결정에 대한 결과는 최소 2~3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실패도 맛보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늘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여러 작품을 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력과 많은 경험이 다음 작품을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절대적 조건은 아니라서, 아직도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고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반성하고 깨닫게 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하실 때마다 변하지 않는 PD님 만의 가치 기준이 있을까요?
늘 그렇지만 작품도 잘 돼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죠. 사실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아무리 작품이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더라도 그 과정에서 제가 즐겁지 않거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저에겐 그냥 일일 뿐입니다. 반면 일은 어렵고 힘들어도 프로젝트를 마무리 했을 때 스스로 "그래도 열심히 했다. 즐겁게 했다"라는 마음이 들 수 있게 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최근 참여하신 작품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즐거웠거나 힘든 일은 어떤 게 있었나요?
최근에 마무리 했던 작품은 ENA 드라마 <굿잡>이었는데요, 준비기간이 너무 짧아서 마치 '생방송'과 같은 시스템을 오랜만에 경험했어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후속작이라는 부담감도 있었고, 너무 바쁜 스케줄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하지만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급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대본 제작과 촬영 스케쥴으로 모두가 너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현장에서 늘 즐거웠어요.
OTT가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많이 체감하시나요?
네, 그럼요. OTT 플랫폼의 다양화로 제작 현장은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크게는 전체적인 제작 시스템이 변했어요, 지금은 12부 이하 작품들이 많아지고 대부분의 드라마가 사전제작을 하기 시작했으며 소재가 다양해진 점도 그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PD님의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마지막 인사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좋은 작품 많이 하는 제작자가 되고 싶네요. 대중들이 많이 좋아하는 드라마도 만들고 싶고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많이 만들고 싶어요. 또 돈도 많이 벌 수 있음 더 좋고요. (웃음) 드라마 많이 사랑해주시고요,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즐겁고 행복한 일을 꼭 찾으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