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with KoBPRA

실재와 가상,
그 경계를 잇다

크리쳐 이펙트 스튜디오 ‘도트’의 특수분장 아티스트 피대성

 INTERVIEWER 오로라 프로젝트   PHOTO 스튜디오 도트 제공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도트’와 대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드라마, CF 등 방송 영역에서 특수분장 작업과 스튜디오 도트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피대성이라고 합니다.
특수분장 파트에서 주로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특수분장은 연기자들이 극중 캐릭터를 표현할 때 분장만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피부의 상처나 신체의 외상을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상처의 종류에 따라 제작 방법이 달라지는데요, 연기자의 얼굴이나 신체 특정 일부의 본을 떠서 만든 인조피부를 실제 장착하는 방법(프로스테틱, Prosthetics)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신체 일부가 훼손되거나 하는 경우는 연기로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전신 혹은 부분 더미를 제작해서 촬영하기도 합니다. 피가 펌핑되는 것과 같은 동적인 구현도 포함되죠. 동물 더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체나 동물 이외 다양한 소품도 제작하는데요, 최근 넷플릭스에서 상영된 SF장르물 <승리호>에 나온 기동대나 로보트의 바디슈트, <구경이> 중 김수로 배우가 탑승한 로보트 같은 SF소품들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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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해오신 작품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비교적 최근에 참여한 작품으로 드라마는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과 <D.P>가 있고, 영화는 <승리호>, <범죄도시2>, <뜨거운 피>, <보이스>, <발신제한>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영화 <사자>, <창궐>, <제8일의 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그리고 드라마 JTBC <괴물>, <설강화>, <구경이>, MBC <이몽>, OCN <모두의 거짓말>, <와쳐>, <경이로운 소문>,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왕>, tvN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배드앤크레이지>의 제작에 참여했어요. 지금은 영화 <황야> 촬영 중에 있고, 곧 드라마 <D.P2>의 작업도 시작될 것 같아요.
정말 많은 작품에 참여하고 계시네요. 최근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 학교는>이 바로 떠오르네요. 좀비나 더미 제작이 많아서 참여 분량도 많았고 또 그만큼 고생해서 그런지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웃음)
<지우학>은 이재규 감독님과 초반부터 다양한 좀비 스타일을 테스트하고 많은 논의를 거쳐 작업을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이 등장하다 보니 초반부터 과도하게 혐오스러운 이미지보다 배우의 이미지를 함께 가져가는 방향으로 작업하기를 원하셨죠. 골격의 변화만 준 캐릭터도 있고, 신체의 일부분이 뜯겨나간 것을 포인트로 잡은 캐릭터도 있죠. 그래서 좀비라는 전체적인 맥락 안에 다채로운 스타일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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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분장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어릴 때 가진 호기심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면서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해했거든요. 대학에서 분장예술학과를 전공했는데 그때 특수분장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어요. 2006년 영화 <검은집>의 막내가 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2014년 현재 설하운 대표님와 스튜디오 도트를 설립했죠. 벌써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작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나요?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대본을 기반으로 분석 작업을 해요. 그리고 VFX팀(CG, 특수효과, 특수분장, 액션)과의 솔루션 회의를 통해, 특수효과가 필요한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디테일한 논의를 하죠. 제가 이 작업을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주로 아날로그식으로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예를 들어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피가 나는 장면을 연출할 때 배우에게 장착하기 위해 장면을 끊어서 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영역에서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으로 ‘원신원테이크(One Secne One Take)’가 가능해 훨씬 자연스럽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어요. 한 분야의 팀만 뛰어나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 협업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소중한 결과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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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크리처를 기획하고 제작하는데 중요한 모티브는 주로 어디서 찾으시나요?
결과물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많지만 의외로 사실적 묘사(리얼베이스)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실제의 것을 많이 관찰하고 수많은 사진을 참조하죠. 배우 더미를 만든다고 하면 실제 배우의 머리결, 피부, 주름까지 관찰을 하죠.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좀비라든지 SF에 등장하는 소품의 경우는 감독님이나 CG팀 혹은 컨셉 아트팀과 함께 디자인 컨셉을 만들어 가기도 해요. 어떠한 과정으로 결정이 되든지 저희는 그 디자인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고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거죠.
특수분장 아티스트는 왠지 담력이 강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특별한 습관 같은 게 있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향에 따라 틀린 것 같아요. 아무래도 피에 관련된 장면을 자주 연출하다 보니 피를 전혀 못 보거나 하면 힘들겠죠. 그런데 제 동료들은 가짜라는 것을 확실히 아니까, 은근히 좀 즐기는 사람들도 있어요. (웃음) 동료 중 한 분은 실수로 상처가 났는데 상처 부위나 피의 색깔을 유심히 관찰하시기도 하더라고요. 특별한 습관까지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작업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2019년에는 영화 <창궐>로 춘사영화제 기술상을 받았던 순간이 기억이 나네요. 참여한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보람을 느끼죠. 그런데 사실 조금은 양면적인 마음이 있긴한데요. 어떤 작품이든지 그 작품의 특수분장을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면 보람을 느끼지만 그 반면 관객들이 볼 때 저 장면이 특수분장으로 연출했다는 걸 몰랐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모르고 넘어갈 정도로 몰입해서 보셨다면 그 자체가 큰 보람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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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하신 배우 중에 기억에 남는 실연자가 있을까요?
많은 분이 기억에 남는데 특히 영화 <사자>에 함께 작업한 배우 우도환 씨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극 중 전신슈트 제작을 위해 본을 떠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폐쇄된 공간의 어려움도 느끼셨고, 또 전신 분장이다 보니 매번 시간도 오래 걸려서 정말 고생하셨어요.
<지금 우리 학교는>의 배우 조이현 씨도 기억에 남는데요. 촬영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기 캐릭터를 설정할 때 특수분장의 역할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더라구요.
과거에 비해 특수분장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아쉬움이나 개선이 되었으면 하는 점도 있으신가요?
네, 아무래도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장르물 제작도 많아지고, 기술팀의 역할이 커지니까 VFX팀의 전문성을 많이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요. 또 예전에 비해 전체 기술 파트들도 발전을 많이 했구요. 그래서 제작 과정에서 더 많이 조언도 구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감하는 아쉬운 부분은 아무래 작업 시간이에요. 특수분장은 대부분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간이 있거든요. 반면, 현장은 늘 ‘더 새로운 것’을 ‘빨리’ 원하는 경우가 많죠. 시간 대비 퀄리티가 진리인데, 늘 넉넉지 않은 시간으로 작업을 할 때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아요. 그래도 최근에 OTT 제작 과정에서는 극 중 힘을 실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시간을 충분히 주시기도 하시더라고요.
마지막으로 20년 가까이 한국 영화, 드라마의 특수분장 역사를 꾸준히 만들어가고 계시는데요. 대표님께 특수분장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많은 제작사에서 장르물을 제작하고 또 많은 팬이 있는 점이 참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사실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좀비물이나 SF물이 힘들고 난해한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사실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은 기회를 통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고 무엇보다 작업이 재미있어요.

특히, 현장에서 배우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도 많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 특수분장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촬영을 위해서 2,3시간 먼저 와서 준비하시거든요. 그 과정을 즐기고 재미있어하시는 배우도 있지만 사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화면에 비친 결과물을 보시고 캐릭터을 잡거나 연기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시면 저도 참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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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이스 크기에 맞게 잘린 화면 뒤로 한 장면 한 장면을 위해 쏟은 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촬영장을 오가는 순간순간 핸드폰 너머로 전해준 피대성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중한 그 삶의 일부분을 공유한 듯한 감사함과 그 순간의 휴식조차 방해한 것 같은 미안함이 몰려왔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피대성 대표가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니라 작업실이었다. 항상 더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는 직업이라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여전히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는, 천상 아티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