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with KoBPRA

세상 모든 소리를
작품에 새긴다

동시녹음기사 최수용

 INTERVIEWER 오로라 프로젝트  
여름은 수많은 소리를 품고 있다.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 소리,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한 폭풍 소리, 퍼붓는 빗줄기만큼이나 정신없는 폭우 소리, 내리쬐는 뙤약볕마저도 쨍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방송 작품에는 이 모든 자연의 소리 이상의 것을 품고 있다. 배우들의 대사와 숨소리, 걷는 소리, 문을 닫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그리고 이 소리는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닿아있어 의식하지 않고서는 그냥 흘러간다.

화면 너머 작품의 DNA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분야의 스태프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 Kobpra with. 이번 호에는 마이크로 들려오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작품에 새기며 작품에 생동감을 더하는 동시녹음기사 최수용 씨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최수용 음향기사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드라마, 영화, 광고 등 촬영과 현장 녹음이 필요한 영상매체에 음향 녹음을 하며 사는 90년생 최수용이라고 합니다.
최수용 기사님이 하시는 음향 녹음 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주로 맡은 작업은 녹음실이 아닌 촬영 현장의 소리를 녹음하는 일입니다. 흔히 동시 녹음이라고도 말하죠. 영어로는 Production sound/Location sound 두 단어로 통용되지만 같은 뜻입니다. 프로 레벨 디지털 레코더, 붐 마이크와 와이어리스 등의 장비가 필요하죠. 현장에서만 실재하는 소리는 주로 배우의 대사나 호흡, 동작음이 대표적이죠. 인물 외의 개체가 움직이는 소리, 앰비언스(특정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소음) 등도 있습니다. 물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의 대사입니다. 다른 소리는 녹음실의 라이브러리가 대체할 수 있지만 배우의 대사는 촬영 순간에만 녹음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동시 작업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도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매번 백 점짜리 소리만 녹음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예를 들어 어렵게 찾은 촬영지에서의 공사 소음, 개 짖는 소리,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에어컨 실외기 소리 등의 생활 소음은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려운 편이죠.
촬영 공간의 반사음이 일반적이지 않아 배우의 대사를 알아듣기 힘든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녹음실에서 후시녹음 작업을 할 경우도 있죠.
하지만 시청자들이 이질감과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소리 연출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모랫 바닥을 걷는 인물의 동선에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 바닥에 모포를 깔거나, 가죽 소파에 앉은 배우가 움직일 때 우두득하는 마찰 소리를 없애기 위해 수건을 구겨 넣고 윤활제를 뿌리거나 하는 식이죠. 그리고 때론 이런 연출이 장비 사용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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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음향 녹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재학 시절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상업영화 스텝에 지원했어요. 다른 분야는 경력이 필요했는데 동시녹음팀은 신입인 저를 뽑아주셨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른 파트보다 인건비가 저렴했어요. (웃음) 2009년 영화 <육혈포 강도단>을 시작으로 내디덨던 미약했던 첫걸음은 어리기만 했던 저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 줬어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복학 후에도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제작되는 작품의 녹음 작업에도 많이 참여했죠. 평범한 우연의 연속이었지만 그 순간들이 겹치면서 어느덧 저의 생업이 되었어요. 쉽고 편한 일은 아니지만, 만족스러운 30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운이 꽤 좋은 사람 같아요.
지금까지 해오신 작품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최근에는 OTT와 유튜브 작품에 많이 참여 했습니다. 일반인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은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를 뽑을 수 있겠네요. 시즌1과 시즌2에선 붐오퍼레이터로, <아신전>에선 B유닛 녹음으로 참여했습니다. 그 외 유투브 웹 드라마 콬TV <배드걸 프렌드>와 영화 <아이윌송>, <밤치기>, <비치온더비치> 등이 있습니다. 붐오퍼레이터 작업 때는 KBS <너도 인간이니>, 영화 <강철비2>,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카센타>, <특별시민>, <검은 사제들> 작업을 했습니다.
작업을 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떤 게 있을까요?
<킹덤> 시즌2 촬영 때가 기억나는데요. 이창 역의 주지훈 배우가 피투성이가 된 어진의 공간을 걸으며 대사를 하던 장면이 있었어요. 문제는 물엿으로 만들어진 피였죠. 배우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찍~  쭈악~ 쫙~’ 하며 물엿 늘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순간 아...망했다 하고 생각했는데, 기적처럼 한 가지 묘수가 떠올랐어요. 당장 분장팀에게 달려가 베이비 파우더를 빌렸죠. 그리곤 배우의 신발에 잔뜩 발라 물엿이 최대한 달라붙지 않게 했어요.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사실 이런 일들은 현장을 경험하다보면 언제든지 겪을 수 있어요. 간혹 선배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내가 이 대사를 자연스럽게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머리 싸매고 몸이 힘들었는지 세상 아무도 몰라. 동시녹음을 계속하려면 이런 성취감이 재미있어야 해. 돈 버는 건 두 번째야.’
협업하신 배우 중에 기억에 남는 실연자가 있을까요?
영화 <비치온더비치> 에서 만난 김최용준 배우와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소수의 배우와 스태프들로 모여 만든 작품이어서 제작 환경이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현장이었어요. 촬영지 주변에 가게가 없어 담배를 서로 나눠 피우거나, 키스신을 앞두고 가글을 빌려주는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작품 이후 7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2년 전 제 결혼식에 축가도 불러줬죠.(웃음)
사실 촬영 규모가 큰 현장은 배우들과 친해지는 게 쉬운 편은 아니죠. 드라마는 매일 소화해야 하는 분량이 많아 배우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죠. 상업 영화는 배우들이 어려운 감정을 최대한 몰입해 한 장면씩 연기를 하다 보니 배우의 대기 시간을 최대한 존중하는게 예의이기도 하구요. 물론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제는 없지만 제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지킬려고 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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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 중 기사님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건 어떤 소리일까요?
소음이 섞이지 않은 명료하고 자연스러운 모든 소리를 좋아해요. 소리라는 건 결국 그 공간과 그 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순간 얻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저에게 성취감을 줍니다. 특별히 배우의 대사가 온전하게 녹음되면 참 행복해요. 그런 점에서 배우의 발성이 단단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심신이 정화됩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사실 꽤 스트레스받죠. (웃음)
음향 기사님들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단체나 제도가 있나요?
영화 쪽에서는 한국영화동시녹음감독협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저는 활동 영역이 영화 이외에도 다양하고 정보가 미약해서 아직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선배님들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주셔서, 예전에 비해 근로 시간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인건비도 꾸준히 납득할 수 있게 인상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최근 방송 플랫폼와 채널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음향 디바이스로 작업을 하실 것 같은데요. 예전에 비해 기술적인 면이나 작업 환경적인 면에서 기사님이 체감하시는 변화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기술은 계속 진보하고 있죠. 하지만 제작단가의 상승으로 인해 분량과 스케줄을 더 욱여넣기 때문에, 현장에 적응하는 건 그만큼 더 어려워졌습니다. 2000년대 상업영화가 붐 마이크 한 대로도 80% 정도 녹음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상업영화는 붐 마이크와 와이어리스를 포함해 최소 6개 채널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게 되었죠. 물론 이런 기술적 변화는 영상 퀄리티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죠. 하지만 현장을 경험하는 작업자 입장에서는 보다 나은 작업 환경과 개선된 처우를 받기 위해 앞으로 더 확실한 능력을 쌓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을 해요.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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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음향 녹음 환경의 성장을 위해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운 점이나 개선되어야 할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소음을 통제할 수 있는 인프라 개선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음향 녹음은 현장 소음과의 전쟁이기 때문에 방음 세트장이 필수입니다. 땅이 넓은 미국이 수 억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블록버스터 세트장을 짓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한국도 세트장들이 있긴 하지만 주로 외각에 짓거나 컨테이너 가건물이어서 비행기 소리나 빗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한계가 많죠. 근로 시간의 개선도 필요합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현장 스태프들에겐 여전히 일을 더 하고 싶어도 현장을 떠나게 하는 큰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집중력을 쏟으며 하루 15시간 정도를 촬영하면서 ‘평생 이렇게 일하고 싶다’라고 마음먹기는 정말 쉽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촬영장에서는 휴대폰은 무음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