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KoBPRA

배우
정혜선

규칙을 잘 지키던 단정한 학생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으로, 무수한 어머니로
그리고 다시 정혜선으로

배우 정혜선은 이십 대의 싱그러움을 모두 가린 채 우리에게 왔다. 검은 머리에 하얀 칠을 하고, 얼굴에 주름을 그려 넣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젊음의 기색을 모두 가린 채 오직 배우의 모습으로.

인터뷰를 위해 정혜선 배우를 찾아갔을 때, 그는 연극 연습에 한창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수많은 어머니 정혜선과 바로 눈앞에서 카랑카랑한 발성으로 연극 연습을 하는 정혜선의 외모는 거의 오차 없이 동일했다. 다만 분장으로 젊음을 가려야 했던 그때와 달리 아름답게 굽이치는 흰 머리와 지혜로운 주름이 표정 따라 일렁이는 진짜 그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만 달라져 있었다.

그는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대본을 읽고 노래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옷보다 더 푸르렀다.

 INTERVIEWER 오로라프로젝트   PHOTO 백홍기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금 공연 준비로 한창 바쁘신 것 같은데 작품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덥고 정신없네요. 지금 준비하는 작품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작품이에요. 정부 지원을 받아 지방을 다니며 공연하는 연극이죠. 연극이라는 게 생방송과 같다 보니 적잖이 부담도 되고 긴장도 되고 그러네요.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서셔서 새로운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2002년 <엄마를 부탁해> 이후 정말 오랜만에 서는 연극 무대네요. 신인이 된 기분이에요. 신인이 따로 있나요. 오랜만에 낯선 무대에 서면 다 신인이지. 신인의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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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넝쿨채 굴러온 당신>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하고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가 주관하는 ‘낭만콘서트 청춘극장’에 포함된 프로그램이다. 정혜선 외에 배우 양재성, 박칠용, 김정하가 출연하고, 유승봉씨가 연출을 맡았다. 지난 8월 2일 전남 강진을 시작으로 포천, 아산, 성주, 태백, 해남에서 공연되었다.



1961년 KBS 탤런트 제1기로 연기자가 되셨죠. 연기자가 되기 전 그러니까 1961년도 이전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단정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 학교 일에 무척 열심인 학생이기도 했고요. 방송반이었는데 다른 학생보다 1~2시간 일찍 등교해서 행진곡을 틀고 공지사항을 방송하고 그랬죠. 웅변도 했어요. 당시엔 반공사상이 투철했던 때라 웅변 행사가 많았는데 이런저런 웅변대회에 참가해 상도 꽤 받았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합창도 했네요.

그쯤 되면 평범한 학생이 아니지 않나요?
그런가? (웃음) 활동을 많이 하긴 했지만 꽤 모범적인 학생이었어요. 규율도 잘 지키고요. 어머니가 좀 엄한 편이셨거든요. 예의와 규범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었죠.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사소한 교통 법규 하나 어기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반듯하고 모범적인 성향에 비해 선생님 내면의 에너지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학창 시절 하셨던 방송반이나 웅변도 그렇고 지금 하시는 연기 활동도 그렇고 모두 대중과 무척이나 가깝게 소통하는 직업이잖아요. 예전에는 음반도 내셨죠. <망각>이라는 곡은 작사도 하셨고요. 선생님이 이렇게 끊임없이 대중의 마음을 두드리는 일을 직업으로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소질도 그럭저럭 있는 편이었고요. 연기를 하게 된 이유도 아버지가 어디서 ‘연기자 지원서’를 가져오셨는데 그 지원서를 보고 ‘나도 연기 한 번 해볼까?’ 싶어서 무턱대고 지원했죠. 당시 KBS 1기 탤런트를 26명 뽑았는데 지원자가 2,300명이 넘었어요. 어쩌다 보니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연기자가 되었네요. 그렇게 평생을 연기자로 살게 되었고요. 그땐 하도 정신이 없어서 ‘연기자가 되어 볼까?’했던 내 꿈이 이뤄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냥 살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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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선생님을 싫어했던 적이 있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혜선 배우는 질문의 의미를 곧장 알아차렸다.

아들과 딸? 어휴! 좋은 어머니 역할도 많이 했는데 <아들과 딸>을 그렇게들 기억하더라고요. 사실 귀남이만 예뻐하고 후남이를 미워했던 그 어머니도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었는데... 시청자들은 그 속사정은 금방 잊고 표독했던 어머니만 기억해요... 아들과 딸 드라마에서 후남이와 귀남이는 쌍둥이였어요. 예전에는 쌍둥이 남매가 전생에 부부 인연이 있던 사람이라는 속설이 있었어요. 그래서 둘 중 하나가 잘 되면 하나가 잘 안된다고들 믿었지. 아들과 딸의 그 엄마도 딸인 후남이가 똑똑하고 야무지니까 아들 귀남이 인생길이 막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 두려움에 그렇게 차별을 한 거지. 그때 하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자식 차별하지 말라며 내 등짝을 때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좋은 엄마로도 많이 나왔거든. <완전한 사랑>에서는 정말 헌신적인 어머니이기도 했고.

맞아요. 선생님은 거의 어머니라는 명사와 동의어가 될 만큼 다양한 어머니 역할을 하셨어요. 젊은 나이부터 노역도 많이 하셨고요. 사실 오늘 선생님 실물을 뵙고 깜짝 놀랐어요. 수십 년 전 <간난이>의 할머니보다 더 젊어 보여서요. 어머니 역할이나 노역을 자주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죠. 스물두 살에 배우가 되었는데 공채로 선발된 배우가 26명밖에 되지 않으니 우리가 모든 역할을 다해야 했어요. 배역을 가리고 할 여유가 없었죠. 그때 처음 맡은 역할이 815 특집 드라마 <그날이 오면>에서 40~50대 중년의 여성이었어. 그런데 그 역할을 너무 잘했나 봐. 중년의 역할이 계속 들어오더라고. 이후 <새엄마>와 <간난이>에서 노역을 했는데 특히 간난이에서 할머니 역할로 연기 대상도 받고 하면서 노역 단골 배우가 되었지요.


배우가 아닐 때 선생님의 삶도 궁금해요.
살면서 배우가 아닌 삶을 산 적은 거의 없어요. 일반인으로 산 경험은 1/10이나 될까?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늘 대본집을 가져가 수시로 들여다보곤 하니까요. 애들 학창 시절에도 학부모 참석 자리가 있으면 늘 방송국에서 곧장 달려가다 보니 분장도 채 못 지우고 가곤 했어요. 나중에 애들이 그러는데 그때 좀 창피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배우니까 좀 예쁘게 꾸미고 왔으면 했는데, 늘 머리에 흰 칠을 하고 할머니처럼 하고 와서요. (웃음)
취미도 골프 말고는 딱히 없어요. 요즘은 골프 예능프로도 나올 만큼 골프가 대중화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아서 나 골프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할 기회도 없긴 했지만요. 탁 트인 야외에서 슬슬 걸으며 운동하는 거 무척 좋아해요. 배우가 아닌 삶에는 친구들과 골프 정도만 있는 것 같네요.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수미, 김영옥 선생님과 함께 출연하신 거 봤어요.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연기자도 있나요?
연기자들은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같은 프로를 해야 그나마 자주 보죠. 김수미 배우나 김영옥 배우도 같은 프로그램을 할 때는 정말 식구처럼 가깝게 지내지만 서로 제각각의 활동을 하다보면 생각처럼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소소한 정을 나누는 인연은 많아요.
저는 거창한 인연보다는 소소한 정을 나누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수미도 명절이면 굴비도 보내오고 아니면 가끔 밥도 같이 먹고 해요. 얼마 전에는 누가 옥수수를 잔뜩 보내왔더라고요. 그런 정이 오가는 사이가 좋아요. 그렇게 잔뜩 받은 옥수수를 쪄와서 오늘 후배들과 나눠 먹었어요. 대단치는 않아도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게 제 인연이고 삶의 방식이에요.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 정혜선으로서 꿈꾸는 앞날이 있다면 어떤 모습인가요?
난 특별한 꿈이 없어요. <망각> 노랫말처럼 그냥 물 흐르듯 사는 거죠 뭐. 강이 흐르듯, 그 강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듯 그렇게 살고 싶어요. 딱히 계획도 없어요. 주어진 대로 사는 편이죠. 가계부도 안 써요. 써 봤자 현재의 삶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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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는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고 계획은 미래를 그리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현재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현재만 존재하는 거고요. 선생님은 과거나 미래보다는 지금 현재에 더 집중하신다는 의미일까요?
바로 그거예요! 어떻게 보면 낙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죠.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지금 주어진 내 삶에 충실한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살다 보면 ‘세월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후회나 걱정이 해결해주는 현재는 없으니까요. 세월이 알아서 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들 살아요. 지금 내 나이는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에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 희망 수명이 83세였어요. 우리 어머니가 그때 돌아가셨거든요. 그런데 어느새 그 나이가 되었네요.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아무래도 나이가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물론 내 마음대로 하는 일은 아니지만, 신이 정해주신 그때까지는 열심히 매 순간을 살려고 해요. 그렇게 살다 보면 세월이 알아서 데려다 주겠죠.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세월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말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그 말은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낸 현자가 불안과 걱정에 잔뜩 움츠린 우리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위로였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건성으로 흘려보내곤 하는 우리에게 따뜻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좋은 위로. 푸른색 옷처럼 매 순간을 푸르게 살아가는 배우 정혜선의 세월이 흘러가며 보여줄 모습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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